관악산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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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명칭의 유래

관악산은 옛날부터 개성 송악산(松岳山), 가평 화악산(華岳山), 파주 감악산(紺岳山), 포천 운악산(雲岳山)과 함께 경기도 오악(五岳)의 하나로 불려져 왔다. 빼어난 수십개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많고 오래된 나무와 온갖 풀이 바위와 어울려서 철따라 변하는 산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 하여 소금강(小金剛)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西金剛) ’이라고도 한다. 또한 관악산은 서울 경복궁의 조산(朝山) 또는 외안산(外案山)이 되는데, 산봉우리의 모양이 불과 같아 풍수적으로 화산(火山)이 된다. 따라서 이 산이 바라보는 서울에 화재가 잘 난다고 믿어 그 불을 누른다는 상징적 의미로 산꼭대기에 못을 파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옆 양쪽에 불을 막는다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고 한다. 

관악산의 생태

관악산 정상부의 바위산은 토양이 척박하여 소나무, 진달래철쭉 같이 외부 환경에 잘 견디는 나무들이 자란다. 특히 바위틈에서는 서울지역에서는 드물게 긴잎회양목이 자란다. 관악산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 식물로 총 11종이 있다. 희귀식물로는 4종이 보이며 그밖에 개체수가 적어 보호식물로 다루어야 할 식물은 약 40여 종에 이르고 있다. 야생동물로는 대형 포유류는 관찰되지 않고 있으나, 멧토끼, 다람쥐 등 설치류와 족제비와 두더지는 적은 수나마 서식하며 조류는 41종이 관찰되었다.

관악산 사적과 명소

연주대
관악산의 봉우리 중에 죽순이 솟아오른 듯한 모양을 한 기암절벽이 있는데, 그 위에 석축을 쌓고 자리잡은 암자를 연주대 라 한다. 원래는 의상대사가 문무왕 17년(677)에 암자를 세우면서 의상대 라 불렀는데, 고려 멸망 후 조선을 반대하던 유신들이 이곳에 모여, 지난 시절을 그리워했다고 하여 연주대(戀主臺)’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소재지 : 경기 과천시 중앙동 산 12-4)

연주암 

연주암은 관악산 연주봉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관악산을 즐겨 찾는 이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사찰이며, 해발 629m의 기암절벽 정상에 위치한 연주대와 함께 관악산의 명소로 손꼽힌다. 『연주암중건기』등의 자료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677년 의상대 아래에 관악사를 창건하였고, 조선 태종11년, 동생인 충녕에게 왕위를 양보한 양녕과 효령대군이 이곳에 머물며 현재의 위치로 관악사를 옮기고 연주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웅전 앞에 있는 3층 석탑이 고려 후기 양식을 나타내고 있음을 볼 때, 창건 연도가 꽤 오래된 고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열녀암
관악산 제2광장에서 서울대 등산로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열녀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에 아낙이 남편과 아들, 딸을 낳고 잘 살고 있었는데 이를 시기한 악한이 아낙의 주인 남자를 찾아와 사냥하러 가자고 유인하여 먼 곳으로 가서 살해하고 돌아와서 아낙을 유혹하여 보았으나 아낙은 완강히 물리쳤다. 한편 남편이 살해된 사실을 모르고 아이를 등에 업고 아낙은 관악영산을 근거로 하여 넓죽한 망부대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도하였다. 이 갸륵한 정성에 감동되어 복두꺼비와 바둑이가 열녀를 다른 짐승으로부터 지켜주는 동안 열녀는 쉬지 않고 기도를 계속하여 지성이면 감천으로 천지인삼덕(天地人三德)이 상응하여 천추에 맺힌 한이 서린 화석으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구전되어 오고 있다.

백제요지(百濟窯址)
관악구 남현동(1980년 4월 1일 이전은 사당동 지역) 538-1번지의 관악산 줄기의 한 야산 동쪽 경사면에 위치한 백제요지(가마터)는 1976년 사적 제247호로 지정되었다. 거의 파괴된 형태로 현재 발굴되지 않은 상태로 보전되고 있다. 밭으로 사용되던 약 200평의 이곳에는 흑토기가 깔려 있었고, 격자문(格子文)과 자리무늬(繩蓆文)의 토기호 파편이 산재되어 있었다. 이 토기편들은 백제 중기∼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이곳이 한강변에 자리잡은 백제시대의 유일한 가마터였음을 알 수 있었다.

봉천동 마애미륵불
관악산 북쪽 중턱의 상봉약수터에 있는 서쪽으로 향하여 우뚝 솟은 바위에 조선시대의 불상으로는 보기 드문 걸작품인 마애미륵불이 새겨져 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전체높이는 153㎝이며 재료는 화강석이다. 불상의 오른쪽 두광 높이에 ‘彌勒尊佛’ 4자가 크게 새겨져 있고, 그 옆에 ‘崇禎三年庚午四月日’ 9자와, 그 밑 연꽃자리 가까이에 ‘大施主 朴山會兩主’라는 글자가 3자와 5자의 2줄로 새겨져 있다. 이 명문이 있어서 이 불상이 미륵보살이며, 인조 8년(1630)에 이룩된 것을 알 수 있다.